'바람둥이'였던 아인슈타인이 부인에게 요구한 이해하기 힘든 조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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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둥이'였던 아인슈타인이 부인에게 요구한 이해하기 힘든 조건들

 

천재과학자라고 불리우는 아인슈타인은 타임지에서 선정한 20세기에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중 한 명 이자 역사상 가장 유명한 물리학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과학 발전에 기여한 큰 업적을 남긴 인물이지만 자신의 부인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조건들을 내걸고 바람까지 피운 일명 나쁜 남자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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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최근에는 나쁜 남자에게 매력을 느낀다는 여성이 늘어나면서 나쁜 남자라고 불리우는 이들과 한번쯤 연애해보는 것도 좋다는 의견까지 등장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아래 영상을 통해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 나쁜 남자와 연애해보는게 좋은 이유 (영상) >

 

# 아인슈타인의 요구조건

 

당당하게 바람까지 피우던 아인슈타인인은 매우 굴욕적인 조건을 첫째부인에게 요구했다고 하는데, 당시 아인슈타인의 아내였던 밀레바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이 조건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어떠한 노력에도 결혼생활은 계속해서 이어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결국 밀레바는 아이들을 데리고 떠나게 되었으며 그가 부인에게 요구한 이해하기 힘든 조건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내 옷은 늘 깨끗하게 빨아 수선하고 가지런하게 정리해둘 것

▶ 내 침실과 서재를 깨끗하게 정리하고 내 책상은 건들지 말 것

▶ 하루 세끼 식사를 정확한 시간에 내방으로 가지고 올 것

▶ 어떠한 친밀함도 나에게 기대하지 말고 나를 질책하거나 비난하지 말 것

▶ 사회적으로나 절대적으로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 함께 앉아있거나 함께 외출하고 여행을 다니는 등의 나와의 개인적인 관계는 모두 포기할 것

▶ 내가 원하지 않는 한 내게 먼저 말 걸지 말 것

▶ 내가 요구할 때는 이의를 제기하지 말고 말하는 것을 즉시 중단하며 내 침대 및 서재에서 즉시 나갈 것

▶ 아이들 앞에서 나를 비하하는 어떠한 일도 하지 말 것

 

 

 


# 첫째부인 밀레바와의 만남

 

어릴 적부터 과학과 수학에 흥미를 가졌던 아인슈타인은 이 분야에서 매우 뛰어난 재능을 보이면서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그의 첫번째 부인인 밀레바 마리치를 만나게 되는데, 밀레바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수학과 언어, 미술 음악 등 다양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으며 밀레바의 아버지는 그녀에게 최상급 교육을 시키기 남학교에서 수업을 받게 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유럽에서는 남학교를 졸업할 수 있는 남학생만이 대학입학 자격시험에 도움이 되는 교육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인데, 그녀는 결국 홍일점으로 수학과 물리전공으로 입학하게 되었고 밀레바와 아인슈타인은 그곳에서 동급생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때 아인슈타인은 자신이 다녔던 특수 고등학교의 교수님이자 그가 하숙하던 집의 주인인 빈텔러 교수의 딸인 마리와 사랑하던 사이였지만 다른 여성과 달리 자신에게 지적으로 도움을 주고 자극을 주는 밀레바의 매력에 빠져 마리를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후 밀레바와 아인슈타인은 편지를 교환하며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다가 연인사이로 발전하게 되었고 행복하게 떠났던 휴가에서 돌아와 혼전임신을 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그해 아인슈타인은 취리히에서 20마일정도 떨어진 곳의 대리교사로 취직하게 되었으며 아인슈타인의 명예를 지키고자 한 밀레바는 자신의 가족에게 돌아가 딸 리제를을 낳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밀레바는 선천적 고관절 탈골을 앓고 있다는 이유로 아인슈타인의 부모님의 결혼반대와 원치 않았던 혼전임신, 떨어진 학업성적으로 인해 대학조차 졸업하지 못했으며(이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진행하고 있던 연구까지 중단하는 등 여러가지로 꼬인 인생길을 걸어오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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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바와 아인슈타인)


# 밀레바의 연구 결과물을 가로챈 아인슈타인

 

딸 리제를이 태어난 해 아인슈타인은 스위스에 있는 특허국의 서기로 취직을 하는 인생의 전환점이 찾아오게 되었으며 동시에 밀레바와의 결혼을 허락받게 되었습니다. 이후 밀레바는 꼬여버린 자신의 인생에 대한 고통을 감당하려 애썼고 아인슈타인은 일과 물리에 대한 연구에 매진했습니다. (이후 딸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밀레바는 아인슈타인의 연구를 계속해서 돕기도 했는데 이때 아인슈타인은 밀레바는 의지가 강하고 독립적이며 나와 동등한 사람을 배우자로 맞게 된 것을 너무나도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으며 이후 물리의 각기 다른 분야에서 네 개의 논문을 발표하게 되면서 이 해는 아인슈타인의 기적의 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논문이 출판될 때는 아인슈타인의 이름만이 남아있었는데, 많은 물리학자들은 최소 이를 밀레바와 함께 공저한 논문이라고 믿고 있으며 밀레바가 단독으로 쓴 논문일 것이라는 주장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논문이 발표되고 아인슈타인은 취리히 대학의 부교수로 임명되어 그의 명성은 더더욱 높아져갔으며 새로운 교수직에 대한 제안은 끊임없이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그 시기에 첫째아들 그리고 둘째아들까지 태어나게 되었는데, 아인슈타인은 오직 과학에만 사로잡혀 집안일에 대해서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으며 이를 바라보는 밀레바는 점점 외로움과 비참함에 무너져갔습니다.

 

(두 아들과 밀레바)


# 밀레바와의 이혼

 

아인슈타인은 베를린에 거주하고 있는 어머니를 만나러 갔다가 두 딸을 키우는 이혼녀이자 자신의 사촌 누나인 엘자 뢰벤탈을 만나 부적절한 관계를 시작했습니다. 이후 이 둘의 관계를 아내 밀레바가 알게 되면서 아인슈타인에게 베를린대학 교수직 제의가 들어왔을 때 이를 반대했지만 아인슈타인은 전혀 개의치 않고 교수직을 수락해 베를린으로 떠나고 말았습니다.

 

밀레바는 결국 두 아들과 함께 아인슈타인을 따라 베를린으로 갔으며 아인슈타인은 밀레바에게 이혼당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자신과의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 지켜야 할 앞서 말한 선언문을 이 둘 부부의 공동 친구 하버에게 전달하는 행동을 보였습니다.

 

자존심이 강한 밀레바는 매우 황당했겠지만 아이들을 위해 이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는데, 얼마 못 가 자신의 노력이 소용없다는 것을 깨닫고 결국 아이들과 함께 그녀는 취리히로 다시 돌아가게 됩니다. 밀레바는 혼자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아인슈타인과 그의 내연녀 엘자의 악명높은 추문으로 그녀는 결국 무너져 내렸고 요양원에 입원하면서 아이들은 가정부 손에 길러지게 되었습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아인슈타인이 내민 이혼 합의서의 이혼을 해줄 시 배우자 부양과 자식들의 양육비로 장래의 노벨상 상금 정부를 줄 것이라는 제안에 대해 밀레바가 자서전을 쓰려고 하자 아인슈타인은 밀레바에게 사람은 착하고 겸손해야 하며 입을 다물어야 한다며 충고 하였고 결국 밀레바는 자신의 마지막 편지에서야 아인슈타인이 나의 과학연구 뿐만 아니라 행복 모두를 강탈했다고 쓸 수 있었으며 아인슈타인은 이혼 합의문 마저도 완벽하게 지키지 않았습니다.

 

 

 

(엘자와 아인슈타인)


# 아인슈타인의 두번째 결혼

 

아인슈타인은 5년간 밀레바와의 별거기간 동안 내연녀 엘자와의 결혼을 생각하고 있었고 결국 엘자와 결혼을 했지만 이 과정에서도 황당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엘자의 첫째 딸인 일세를 비서로 두었는데 이 두사람사이에서도 사랑이 싹트게 되었고 일세는 자신의 친구에게 아인슈타인이 일세에게 엄마인 엘자 그리고 첫째 딸 일세 모두를 사랑하지만 자식을 낳기 위해 젊은 일세와 결혼하고 싶다고 말했다는 내용을 담아 보냈습니다.

 

심지어 아인슈타인은 자신이 결혼할 상대를 모녀에게 고르도록 직접 맡긴다고 말했고 결국 딸 일세가 양보해 엄마 엘자가 아인슈타인과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이후 6명의 여성과 바람을 피웠으며 자신의 불륜을 아내와 딸들에게 하나하나 보고하기도 했습니다.

 

밀레바의 첫째 아들 한스 알베르트는 이후 캘리포니아 대학 명예교수가 되었고 둘째 아들 에듀아르드는 의학을 공부하던 중 정신분열증에 걸려 정신병원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아인슈타인은 아들을 만나러 가기는 커녕 에듀아르드가 태어나지 않았어야 했다고 말하며 밀레바를 원망했습니다. 밀레바는 둘째 아들의 병원비로 인해 경제적으로 궁핍한 생활을 하다가 72세 나이로 사망하였고 둘째 아들은 밀레바의 죽음이후 정신병원에 방치되다 사망하게 되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업적은 널리 알려지면서 큰 명예를 얻었던 반면 잊혀져 가던 밀레바의 업적은 1986년부터 점차 알려지고 있으며 아직도 많은 과학자들은 이 둘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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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이 사진은 유명해질 것이라며 아인슈타인이 지은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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